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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식물

기후변화에 따른 식물의 종자 저장 전략 변화

by svcarat527 2025. 7. 22.

기후변화에 따른 식물의 종자 저장 전략이 어떻게 변화 하는지 알아보겠다.

기후변화에 따른 식물의 종자 저장 전략
기후변화에 따른 식물의 종자 저장 전략

종자는 식물이 미래를 예약하는 방식이다

식물이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동도 빠르지 않고, 단기적으로 뿌리를 옮길 수도 없다.
그렇기에 식물이 선택한 전략 중 하나는 자신의 유전자를 담은 ‘종자(seed)’를 통해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것이다.

종자는 단지 생식 구조가 아니라, 미래의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정보 저장소이자 생존 전략의 결정판이다.
종자는 뿌리도 줄기도 없이 수분 없이 긴 시간을 버티며, 때로는 수년에서 수십 년까지도 발아 가능한 상태로 생명력을 보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급격한 기후 변화 속에서는 이러한 종자의 전략도 위협받고 있다.
고온, 극심한 건조, 불규칙한 강수, 토양 산성화, 심지어 병원균 환경의 변화까지 종자의 저장성과 발아 성공률을 흔들고 있으며, 그에 따라 식물들은 종자의 구조, 수, 크기, 발아 조건을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이번 글에서는 기후 스트레스가 식물의 종자 전략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으며, 자연생태계와 인공 종자 저장 시스템(Seed bank)에 어떤 새로운 과제가 나타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고온·건조화는 종자의 수분 유지 능력과 휴면 기간에 영향을 준다

기후변화의 대표적인 현상 중 하나는 기온의 상승과 강수량의 감소이다.
이런 조건은 종자가 저장되는 환경 자체를 바꾸고 있으며, 그 결과 종자는 더 빠르게 수분을 잃고, 건조한 상태에서 생존 가능한 기간(seed viability)이 짧아지게 된다. 특히 열대 및 아열대 지역에서 지표 온도가 35도를 넘는 날이 늘어나면서 종자는 휴면 중이라 하더라도 세포 내 단백질과 효소가 손상될 수 있고, 장기 보존을 위한 대사 억제 기능이 불완전해질 수 있다. 식물은 이에 대응하여 종자의 외피를 두껍게 만들거나, 수분 증발을 막는 왁스층을 강화하거나, 항산화 효소를 내부에 축적하는 방식으로 종자 내 수분 손실을 늦추고 있다.

 

또한 일부 종은 더 깊은 휴면 상태(dormancy)를 선택해 건조 환경에서도 수년 이상 깨어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지연 발아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이런 전략은 예측 불가능한 기후에서 우연히 찾아올 적절한 조건을 기다리는 데 유리하지만, 지나치게 휴면 기간이 길어지면 자연상태에서 종자 뱅크(seed bank)의 밀도와 다양성이 감소하는 위험도 있다.

종자의 크기와 수의 분포 전략이 달라지고 있다

식물이 생산하는 종자의 크기와 수량은 단순한 유전적 특성이라기보다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 확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적응 전략이다. 기후가 안정적이고 양분이 풍부한 환경에서는 식물은 일반적으로 크고 영양분이 풍부한 종자를 소수 생산한다. 이 전략은 각 종자의 발아 이후 생존 확률을 높이는 데에 유리하다. 대표적으로 나무류나 숙근초(多年草) 식물들이 이 전략을 따른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이러한 전략에 중대한 전환을 강요하고 있다.
지속적인 고온, 예측 불가능한 강우, 빈번한 가뭄, 그리고 생육기 내 극단적 기후의 반복은 하나의 위치에서 종자가 무사히 발아해 자라는 것을 점점 더 불확실한 과제로 만들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식물들은 작고 가벼운 종자를 많이 생산하는 방향으로 번식 전략을 전환하고 있다. 이 전략은 개별 종자의 생존률은 낮지만, 더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갈 가능성이 높아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유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식이다. 특히 건조 지대나 단기간 내 생육과 번식을 마쳐야 하는 일년생 초본 식물에서 이 전략이 뚜렷하게 관찰된다.
이들은 수백 개에서 수천 개에 이르는 극소형 종자를 짧은 생장 기간 안에 빠르게 생성하고, 비가 내리는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발아하는 구조를 갖는다.

 

그러나 이 전략에는 분명한 리스크도 존재한다.
각 종자가 보유한 영양분이 적기 때문에 발아 후 초기에 충분한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곧바로 고사할 확률이 높아진다.
즉, '양보다 질'에서 '질보다 양'으로의 전략 전환은 다양한 실패 가능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기후 불확실성에 대비한 ‘확률적 도박’이기도 하다. 또한 이런 전략은 장기적으로 종자당 유전자 다양성 확보 측면에서 다소 불리할 수 있으며, 극단적으로는 ‘기회에 의존하는 진화 압력’이 식물 집단 내 유전적 불균형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발아 조건의 민감성이 강화되며, 발아 실패가 늘고 있다

종자가 발아하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이 일정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온도, 수분, 빛, 산소, 그리고 토양 내 이온 농도와 같은 다양한 변수들이 발아 신호(trigger)로 작용한다. 이러한 신호는 식물 종마다 다르게 설정되어 있으며, 이는 진화 과정에서 그 종이 서식하던 지역의 기후와 생태적 리듬에 최적화되어 조절되어 왔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이런 조화된 리듬을 깨뜨리고 있다. 특히 겨울철의 비정상적인 고온 현상, 예측할 수 없는 봄철 일교차, 집중호우 이후 지속되는 건조 기간 등은 종자가 착각하도록 만든다. 종자는 이러한 오차로 인해 비정상적인 시기에 발아하거나, 실제 발아에 적합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위험하다’고 판단해 발아하지 않는 문제가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는 겨울철 이상 고온으로 인해 봄철 개화를 준비하는 종자가 너무 일찍 깨어나 이후 찾아온 한파에 의해 고사하는 조기발아 피해이다.

 

반대로, 일시적인 소량의 강우에 반응해 짧은 틈새 시기에 발아한 종자들이 곧이어 이어진 가뭄으로 인해 발아 직후 말라죽는 사례도 잦아졌다.

이러한 기후변화 상황에서 식물은 다단계 발아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즉, 같은 해에 생산된 종자 중 일부는 즉시 발아하고, 일부는 장기 휴면 상태로 남겨두는 방식이다.
이 전략은 시간을 분산시켜 기후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보험성 전략이지만, 지속적으로 발아 실패가 누적되면 결과적으로 식물 군집의 밀도와 종 다양성 자체가 감소할 수 있다.

 

또한 발아 조건이 너무 정교하게 설정된 일부 식물은 환경 조건의 미세한 변화에도 발아율이 급감하며, 이는 희귀종이나 특정 생태계에 의존하는 식물의 생존 가능성을 크게 낮추게 된다.
결국 기후변화는 종자 자체보다, 그 종자가 깨어나야 할 '타이밍'과 '맥락'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기후변화는 인공 종자 저장소에도 새로운 도전을 제시한다

인류는 식물 유전자원의 소실을 막기 위해 국내외 수많은 종자 저장소(seed bank)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식물 종자를 저온·저습 환경에서 장기 저장하여 필요 시 다시 복원하거나 재배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이러한 인공 시스템에도 새로운 도전과 위협을 제기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저장소의 물리적 환경 안정성이다.

 

대표적인 예로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는 영구동토층 위에 세워졌지만, 최근 북극권의 지온 상승으로 저장고에 빙하 해빙수가 유입되어 구조적 손상을 입은 바 있다. 이는 기후 변화가 저장소의 입지 선정과 구조 설계에도 기본 전제를 바꾸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저장 조건의 작은 변화도 종자의 생존율과 발아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종자는 저장 전 정확한 수분 함량 조절과 온도 안정성이 확보되어야 수년, 수십 년의 보존이 가능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전력 불안, 냉방 시스템 과부하, 자연재해 리스크 등은 이러한 보관 조건을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더불어 문제는 단순히 저장의 물리적 안정성뿐만이 아니다.

 

기후변화는 미래 환경의 조건을 끊임없이 바꾸기 때문에, 과거의 생태 조건에서 수집한 종자가 미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즉, 저장소에 보관된 종자라고 해서 그 자체가 ‘기후 위기에 대한 안전망’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 극저온 저장 기술(cryopreservation)
  • 종자 DNA 정보 디지털화
  • 지역 생태계 기반의 ‘현장 종자 저장(field gene banks)’ 확대
  • 동적 보존 전략(dynamic conservation)
    보다 정교하고 분산된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앞으로는 종자 저장의 목표가 단순한 ‘유지’에서 ‘기후 적응성과 복원력을 갖춘 다양성 확보’로 전환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생물다양성과 생태 유전자 흐름에 대한 장기적인 통합 연구가 필수적이다.

결론: 종자는 작지만, 생태계의 미래를 쥐고 있다

기후변화는 식물의 광합성, 성장, 생리적 조절을 넘어 이제 그들의 생존 전략의 마지막 단계인 종자 시스템까지 흔들고 있다.
종자는 단지 생명의 씨앗이 아니라,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식물의 지연된 전략이며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생태학적 자산이다. 기후 변화는 그 종자의 휴면 기간, 발아 조건, 저장 능력, 확산 방식 등 모든 영역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식물은 이에 맞춰 새로운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우리는 종자를 단순히 저장하거나 재배하기 위한 자원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종자 안에는 환경을 견디는 정보, 생존에 대한 선택, 생태계의 회복력이 담겨 있다. 이제는 종자 하나하나가 기후위기 시대의 적응성과 복원력의 핵심 지점임을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