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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식물

기후변화 속 식물의 병해충 방어 전략 변화

by svcarat527 2025. 7. 9.

이번 편은 기후변화 속 뜨거운 지구에서 식물은 어떻게 적을 막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온도와 강수량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식물의 적도 바꾸고 있다.
식물이 마주하는 환경은 다차원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식물에 피해를 입히는 병원균과 해충의 활동 범위, 생존력, 공격 방식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기후변화 속 식물의 병해충 방어 전략
기후변화 속 식물의 병해충 방어 전략 변화

예전에는 특정 지역에 국한되던 병해충이 이제는 고위도, 고지대, 더 넓은 생태 영역까지 퍼지고 있으며, 겨울철 온난화로 인해 해충의 월동률이 증가하고, 연간 세대 수가 증가하면서 식물에 대한 피해 강도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한편, 고온다습한 조건이 길어지면서 곰팡이, 세균, 바이러스성 병원체의 번식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식물은 더 이상 단순한 방어 방식으로 이 공격에 대응할 수 없다.

이에 식물은 외부 스트레스와 병해충을 동시에 고려한 종합적 방어 시스템으로 생존 전략을 진화시키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해 달라진 병해충의 양상과 그에 맞서 식물이 어떻게 물리적, 화학적, 면역적 방어 체계를 재조직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1. 병해충의 행동과 분포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기후변화는 병해충에게 더 넓은 공간과 더 긴 활동 기간을 제공하고 있다.
기온이 상승하면 해충의 대사 속도와 생식 주기가 빨라지고, 겨울이 따뜻해지면 월동 성공률이 높아져 한 해에 여러 세대를 번식시킬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다.

예를 들어,

  • 진딧물(Aphididae)은 평년보다 높은 기온에서는 5~6세대까지 번식이 가능해져 봄철 작물 피해가 조기에 시작된다.
  • 총채벌레(Thrips)는 평균 기온이 2℃만 높아져도 개체 수가 3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

이러한 해충은 과거에는 병해 피해가 적던 지역에서도 급격한 확산세를 보이고 있으며, 지역 식생의 병해충 내성 균형을 흔들고 있다.

병원균도 마찬가지다. 고온다습한 환경은 곰팡이와 세균의 생존과 확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다.
특히 장마와 같은 비정상적 강수 집중 현상은 잎과 줄기 표면의 수막을 오래 유지시켜 병원균의 감염 확률을 높이고, 확산 경로도 다양화시킨다.

예를 들어,

  • 역병(Phytophthora spp.)은 비가 자주 내리는 여름철 토양 내 수분 과잉 조건에서 쉽게 번식하고,
  • 흰가루병은 높은 습도와 일교차가 클 때 잎 표면에 정착하여 광합성 조직을 직접 파괴하며 빠르게 퍼진다.

기후가 변화하면서 병해충의 출현 시기와 활동 패턴이 달라지고 있어, 기존의 예측 모델로는 더 이상 정확한 병해충 방제가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2. 식물의 1차 방어선: 물리적 구조의 진화

식물은 병원체나 해충이 접근하기도 전에 외부 침입 자체를 막기 위한 물리적 장벽을 발달시켜 왔다.
기후변화로 환경 스트레스가 복합화되면서 이러한 물리적 구조는 더욱 정교하게 진화하고 있다.

 

가장 먼저 주목할 것은 큐티클과 왁스층이다.
잎과 줄기의 표면을 덮고 있는 이 보호층은 자외선, 열, 병원균, 곤충 등 외부 자극으로부터 식물 조직을 보호하는 1차 장벽이다.
기온이 상승하고 자외선이 강해질수록 식물은 큐티클층의 두께를 증가시키고, 왁스 성분의 조성과 배치를 바꾸며 더 강한 방어력을 갖추게 된다.

 

이 외에도 식물은 잎 표면에 섬모(trichome)라는 미세한 털 구조를 발달시켜 해충이 쉽게 붙지 못하게 하며,
일부 섬모는 유관세포(glandular cell)를 포함하고 있어 접촉 시 점액이나 독성물질을 분비해 곤충의 섭식을 억제한다.

또한 해충이 자주 침입하는 부위, 예를 들어 어린 잎, 줄기, 꽃봉오리 주변에는 세포벽의 리그닌화가 강화되어 물리적 강도가 높아지며, 병원균이 조직 내부로 침입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이처럼 식물의 물리적 방어는 광환경, 기온, 습도 등 외부 조건에 따라 구조적으로 유연하게 조정되는 살아있는 갑옷이다.

3. 2차 방어 전략: 식물의 화학적 방어 반응 변화

기후 변화로 병해충의 위협이 증가함에 따라 식물은 화학물질을 이용한 내적 방어 메커니즘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화학 방어는 2차 대사산물을 기반으로 작동하며, 공격이 감지되면 빠르게 합성되어 병원체 또는 해충의 생리 기능을 억제한다. 대표적인 화학 방어물질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페놀류(Phenolics): 항균 및 항산화 기능. 병원균 세포벽을 파괴하거나 증식 억제.
  • 테르페노이드(Terpenoids): 해충의 위장장애 및 신경 독성 유도. 식물향으로 방어 신호 전달.
  • 알칼로이드(Alkaloids): 곤충 신경계 마비 유발. 독성으로 섭식 거부 유도.
  • 사포닌(Saponins): 세포막에 결합하여 병원균 세포 용해. 진균류에 특히 강한 효과.

기후변화로 인한 스트레스가 강해질수록 식물은 이들 물질을 상시적으로 기저 수준에서 더 많이 생산하거나, 공격 시 합성 속도를 가속화하는 방식으로 유전자 조절 체계를 진화시키고 있다.

또한 병원균이 침입했을 때, 식물은 병리반응 단백질(PR proteins)을 발현해 직접 병원체의 세포벽을 분해하거나 감염 조직 주변을 괴사시켜 병의 확산을 막는다.
대표적으로 PR-1, PR-2, PR-5 단백질군은 항균 작용과 감염 억제 반응의 핵심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4. 식물 면역 시스템의 재조정: 유도 저항성과 전신 방어

식물은 단순한 방어 구조를 넘어서 면역 시스템에 가까운 반응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 면역 반응은 반복된 병해충 노출 경험을 바탕으로 더 빠르고 강한 2차 반응을 가능하게 하는 기억 기반 시스템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전신획득저항성(SAR, Systemic Acquired Resistance)이다.
이 시스템은 식물의 한 부분에서 병원체가 감지되면 살리실산(SA)과 같은 신호 분자가 체내를 순환하며 다른 부위에 미리 방어 유전자(예: PR 유전자)를 활성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와 유사한 반응으로 유도저항성(ISR, Induced Systemic Resistance)이 있다.
ISR은 근권에 존재하는 유익 미생물(예: Pseudomonas, Bacillus)에 의해 유도되며, 식물 내부 방어 신호 체계를 비활성 상태에서 ‘준비 상태’로 전환시킨다.
이 시스템은 주로 자스몬산(JA), 에틸렌(ET) 신호 경로를 통해 작동하며 해충과 다양한 병원체에 대한 비특이적 광역 방어를 가능하게 한다.

기후 변화는 이들 시스템에 더 빠른 반응성과 더 긴 지속성을 요구하게 되었고, 식물은 해당 유전자 발현을 보다 정밀하게 조절하며 병해충의 예측 불가능한 공격에 적응하고 있다.

결론: 식물은 싸우고 있다.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식물은 말을 하지 않지만, 기후변화와 병해충이라는 두 적을 동시에 마주하며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이들은 움직이지 않지만, 큐티클을 두껍게 하고, 독성 물질을 합성하며, 면역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유익한 미생물과 협력해 그 자리에서 살아남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 나가고 있다.

우리는 이들의 생존 방식에서 배워야 한다.

기후 위기 시대에는 식물의 병해충 방어 전략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농업, 도시 조경, 생태 복원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또한 병해충 방제를 위한 인간의 개입 역시 더 이상 화학적 살충제나 병원균 억제제만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식물 고유의 방어 능력을 강화하고, 기후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유전형질, 생리 리듬, 생태적 동반자
함께 설계하고 보호해야 한다.

식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전장에서 싸우고 있다.
그들의 방패는 점점 진화하고 있으며, 이 싸움의 결과는 결국 우리의 생존과도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