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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식물

기후변화로 수분 보존을 위한 식물의 생리적 변화

by svcarat527 2025. 7. 5.

수분이 사라질 때, 식물은 내부 조직을 바꿔 생존을 설계한다

기후 변화로 수분 보존을 위한 식물의 생리적 변화
기후 변화로 수분 보존을 위한 식물의 생리적 변화

 

기후 변화로 인해 물은 식물에게 가장 치명적인 생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전까지 물이 일시적으로 부족했던 환경과 달리, 지금의 기후 위기는 가뭄의 지속성, 강도, 예측 불가능성을 동반한다.
이러한 조건은 식물에게 단순한 물 부족이 아닌, 세포 손상, 대사 불균형, 생장 중단, 궁극적으로는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적 생존 위협이 된다.

식물은 이러한 위기에 맞서 뿌리를 깊게 뻗거나 기공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조절해왔다.
하지만 기후가 더 혹독해지자, 식물은 더 근본적인 전략을 선택했다.
그것은 바로 조직 내부 자체를 리모델링하여 수분을 잃지 않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이번 글에서는 식물이 세포 구조, 조직 배열, 물리적 밀도, 대사물 조성 등을 어떻게 바꾸어 수분을 내부에 저장하고 유지하는지를 생리학적・형태학적・분자적 관점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1. 왜 조직 내 수분 보존 전략이 중요한가?

식물이 수분 부족 상태에 놓이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반응은 세포 팽압(turgor pressure)의 저하다.
팽압이 떨어지면 세포벽이 수축되고, 광합성 효소가 비활성화되며, 성장 관련 유전자들의 발현이 억제된다.
이는 곧 식물의 생장 정지와 세포 손상, 세포 사멸로 이어질 수 있어 뿌리나 기공 같은 외부 구조의 조절만으로는 생존이 어렵다는 의미이다.
식물은 수분이 줄어들 때 가장 먼저 자신의 내부 환경을 바꾸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이를 통해 세포 내 수분을 오래 유지하고, 조직 전체의 수분 손실 속도를 늦추는 내부 최적화 생존 전략이 작동한다.

이러한 ‘내부 구조 변화’는 단순히 물리적인 저장만이 아니라 수분 유지와 관련된 생리 대사 리듬, 세포 구성 변화, 단백질 구조 변화 등을 포함한다.
이 모든 반응은 식물의 조직 단위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가뭄에 강한 식물일수록 이 능력이 정교하게 발달되어 있다.

2. 세포벽 조정: 팽압 유지와 수축 방지의 기초

식물 세포는 수분을 잃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세포 팽압(turgor pressure)이 감소한다.
이 팽압이 유지되지 않으면 세포는 구조적으로 수축되고, 광합성 능력과 생장 기능은 빠르게 저하된다.
이러한 생리적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식물은 세포벽의 유연성과 견고함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전략을 사용한다.

 

우선 식물은 세포벽의 주성분인 셀룰로오스(cellulose)와 펙틴(pectin)의 구성 비율을 조절한다.
셀룰로오스는 세포벽의 강도를 담당하는 섬유소이고, 펙틴은 수분을 붙잡고 세포벽의 신축성과 접착성을 조절하는 다당류다.

가뭄 상황에서는 식물이 펙틴 중에서도 가교 결합이 잘 일어나는 ‘메틸화되지 않은 형태’의 펙틴을 늘리고, 이 펙틴들이 세포벽 사이의 공간을 촘촘히 메우도록 유도한다.
이 조절은 물이 세포 내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지연시키고, 세포벽이 과도하게 수축되는 현상, 즉 리그니피케이션(lignification)이나 플라스몰리시스(plasmolysis)를 방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익스펜신(expansin)과 엑스텐신(extensin) 같은 세포벽 재구성 단백질의 활성이 높아지면서 세포벽의 이완성과 재배열이 동시에 일어난다.
익스펜신은 셀룰로오스 미세섬유 사이의 수소결합을 느슨하게 만들어 세포벽이 일정한 팽압을 유지하면서도 탄력 있게 버틸 수 있도록 돕고, 엑스텐신은 세포벽을 보강해 구조적 안정성을 높인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수동적인 방어가 아니라,
식물이 스스로 물리적 손상을 사전에 차단하고 수분을 오래 유지하기 위한 구조 재설계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3. 수분 저장조직의 강화와 분화

수분 스트레스가 심화되면, 식물은 물을 흡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저장하는 구조를 발달시킨다.
이때 사용되는 전략 중 하나가 바로 수분 저장조직의 조직학적 리모델링이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엽육조직(mesophyll)과 피층세포(cortical cells)의 변형이다.

식물은 특정 조직에서 액포(vacuole)의 크기를 증가시키고, 세포 간 공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수분을 효율적으로 저장하려 한다.
이러한 조직은 잎이나 줄기뿐만 아니라, 뿌리의 상피 조직에도 형성될 수 있으며, 전체 식물체가 수분 저장 기능을 갖춘 통합 구조로 변형된다.

예를 들어, 선인장류나 용설란류 식물은 줄기 내부 대부분을 다육화된 저장세포(succulent parenchyma)로 채우고 있으며, 이 세포들은 낮 동안은 팽압을 유지하고, 밤에는 수분을 방출해 대사 기능을 지원하는 동적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피층세포의 공극율 조절은 수분 이동 경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건조 환경에서는 세포 간 공간을 줄여 공기 흐름을 차단하고, 증산이 일어날 가능성을 최소화하며, 피층을 수분 확산을 차단하는 완충막처럼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조직 리모델링은 식물의 외부 구조 변화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고 빠르게 적용 가능한 생존 전략으로 간주되며, 다육식물뿐 아니라 일부 작물(예: 고구마, 고추, 콩)에서도 스트레스 조건에서 관찰된다.

4. 수분 결합 물질의 축적과 대사 조절

식물은 물리적 구조를 바꾸는 것 외에도, 세포 내부의 화학 환경을 변화시켜 수분을 잡아두는 능력을 강화한다.
이 전략은 주로 삼투압 조절 물질의 축적수분 안정화 단백질의 발현 증가를 통해 이루어진다.

수분이 줄어들면 세포 내 수분 포텐셜이 낮아지고, 물이 외부로 빠져나가려는 삼투압 경향이 커진다.
이를 막기 위해 식물은 세포 내 프롤린(proline), 글라이신베타인(glycine betaine), 솔루블 당류(glucose, raffinose, trehalose) 등을 다량 축적한다.
이 물질들은 수분과 강하게 결합해 삼투압을 증가시키고, 세포막을 통한 수분 손실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프롤린은 수분 유지, 단백질 구조 안정, ROS 해독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스트레스 상황에서 식물이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생화학적 완충제로 작용한다. 이러한 물질의 축적은 단순한 축적이 아니라, 식물 호르몬(특히 ABA, ethylene 등)의 유도 하에 유전자 발현을 통해 정밀하게 조절되는 생리 현상이다.

 

또한 식물은 LEA(Late Embryogenesis Abundant) 단백질, Dehydrin, HSP(Heat Shock Protein) 같은 스트레스 대응 단백질을 세포 내에 발현시킨다. 이들 단백질은 세포 구조를 안정화시키고, 단백질의 변성과 막 단백질의 손상을 방지하며, 수분이 거의 없는 조건에서도 세포 내 환경을 생존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시킨다. 이러한 대사 조절은 조직 수준에서 세포 생존률을 높이고, 세포 간 수분 손실의 확산을 억제하는 데 기여한다.

5. 조직 리모델링과 ABA 신호의 연결 고리

식물은 조직을 스스로 바꾸기 위해 외부의 자극을 내부 신호로 변환하는 체계를 필요로 한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아브시식산(ABA, Abscisic acid)이다.

ABA는 대표적인 식물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가뭄이나 고온 환경에서 빠르게 생성된다.
이 호르몬은 뿌리에서 먼저 생성되어 잎으로 이동하거나, 잎에서 자체적으로 합성되어 전신에 전달되며, 조직 차원의 수분 보존 전략을 촉진하는 신호 전달자 역할을 한다.

ABA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조직 리모델링을 조절한다:

  • 삼투 조절 유전자 활성화
     → 프롤린, 당류, 베타인 등 삼투 조절 물질을 합성하는 유전자들의 전사를 유도
  • LEA, Dehydrin 등 보호 단백질 유전자 발현 증가
     → 세포막 안정화, 단백질 구조 보호 기능 강화
  • 세포벽 구조 조절 유전자 발현
     → 세포벽 유연성과 탄성 회복 능력 향상
  • 기공 폐쇄 유도 + PIP 아쿠아포린 억제 또는 조절
     → 수분 손실의 속도 조절

즉, ABA는 수분 스트레스가 감지되었을 때, 세포 단위의 대사 조절에서 조직 단위의 구조 재배치까지 총괄하는 ‘전신 통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이 신호 체계는 빠르게 반응하고, 조건이 개선되면 반대로 회복 유전자 경로를 작동시켜 가역적인 생리적 변화도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ABA는 단순한 호르몬이 아니라, 조직 리모델링과 수분 보존을 아우르는 식물 생존 전략의 지휘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결론: 식물은 물이 사라질 때 내부를 설계한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외부적인 환경 변화가 아니라, 식물 내부에 생존을 위한 근본적인 구조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식물은 외부에서 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 구조를 바꿔 살아남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세포벽의 조절, 수분 저장 조직의 재배열, 삼투 물질의 전략적 축적, 보호 단백질의 동원, 호르몬 신호에 따른 분자 조절 시스템까지 
식물은 하나의 생물체로서 물리적, 생화학적, 분자적 적응을 통합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조직 내 생리적 리모델링은 앞으로 기후변화에 강한 작물 육종, 도시녹지 식재, 기후 회복 탄력성 확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생물학적 해답이 될 수 있다.